8卷4冊 : 四周雙邊 半郭 20 x16.5 cm, 有界, 11行20字 註雙行, 上下向二葉花紋魚尾; 29 x 20 cm.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류세명의 시문집이다. 안동 출신. 류운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 는 류기(柳䄎)이며, 아버지는 류원리(柳元履)이다. 류원지(柳元之)의 문인이다. 1660(현종 1)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75(숙종 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78년에는 검열을 지냈다. 이어 사관(史官)․이조좌랑을 거쳐 1689년에 지평․교리․헌납을 역임하였다.
1689년 3월홍문록에 등재되고, 다시 윤3월에 재차 홍문록에 등재되었다. 또 그해 12월 사가독서를 하였다.한때 공충도도사(公忠道都事)로 있을 때 서천군수의비행을 탄핵하여 파 면시켜 도내가 숙연하였고, 교리로 있을 때는 부교리 민창도(閔昌道)와 함께 노론의 송시열 ․김수항(金壽恒)․김석주(金錫胄)에 대한 엄벌과 민정중(閔鼎重)을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차자 (箚子)를 올려 민정중을 뒷날벽동(碧潼)으로 유배하게 하였다. 읽지 않은 글이 없다고 할 만 큼 많은 책을 섭렵하였고, 궁리하지않은 이치(理致)가 없다고 할 만큼 사물의 이치에 통달 하였다. 늘 혼자서 자신을 성찰하는 공부에 열중하였다.
이 문집은 종6세손인 의목(懿睦)이 교정, 정사(淨寫)해 놓은 것을 1833년에 간행하였다. 시는 자연을 읊은 것이 대부분이고, 류원지, 이황, 홍만수등의 시를 차운한 것도 많다.
서(書)에는 스승인류원지에게 구방심도(求放心圖)를 논하여 올린 품목과 홍만종(洪萬鍾)에게 엄흥도의 의열을 들어 사육신의 사당에 같이 배향할 수는 없지만 별묘(別廟)를 세워 제향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내용의 답서가 있다. 잡저의 「권옹이도기의(倦翁易圖記疑)」는 권옹이 역도의 주석을 달고 류원지가 도식에 대하여 해설을 하였는데, 그가그것을 읽고 의심난 사항을 기록한 것이다. 논(論)은 맹자가 역리(易理)를말하지 않았다는 말에 대하여 맹자가 역리를 말하지 않은 것은 깊은 뜻이 있는데 중인(衆人) 들이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해명한 것이다.